[기후잡담]기후·에너지 다중 위기의 시대, 지금 필요한 것은 어쩌면 ‘어둠 속의 랜드마크’

매니저꾸네
20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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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덧 12월도 절반이 지났다.

연일 쏟아지는 각종 통계 수치와 ‘대학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같은 기사들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임을 알려준다.

 

미디어에서 전하는 ‘올해의 OO’ 기사 외에 연말이 왔음을 깨닫는 또 하나의 계기는 서울 시내 거리의 조명 장식을 마주할 때다. 팬데믹으로 외부활동이 제한적이었던 지난해 연말 환상적인 미디어 파사드로 신드롬을 일으켰던 한 백화점은 올해도 화려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건물을 가득 채우는 대형 스크린과 수많은 조명은 경쟁 상대인 이웃 백화점의 조명 장식과 함께 서울의 밤거리를 환하게 밝힌다. 백화점 측은 화질은 2배 높이고 작년보다 210만 개의 LED를 더 사용하지만 에너지 소비량은 절반 정도로 줄였다며 에너지 절감 성과 홍보에 적극적이다. 이토록 화려한 장식을 즐기는 동시에 기존 대비 에너지 사용량도 줄이는 대안을 마련했다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과연 이를 에너지 절감이라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 남는다.

조명 경제학을 연구하는 툴루즈 대학 Georges Zissis 교수에 의하면 지난 10년간 조명에 사용되는 전력량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의 보급으로 약 20%에서 13%로 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효율 개선에도 조명으로 인한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2억 4,800만 대 자동차의 탄소배출량과 맞먹으며, Zissis는 LED의 효율 향상이 소비자들로 하여금 불필요한 조명을 계속 사용하게 하여 오히려 절전 효과가 역전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결국 꼭 필요할 때만 에너지를 소비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으면 효율 개선을 믿고 오히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제껏 열심히 달려온 한 해를 축하하며 연말 분위기를 살려주는 거리의 조명과 장식은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 연말 이처럼 화려한 서울의 야경과 달리 수많은 랜드마크를 보유한 유럽 도시들의 상황은 다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장기화로 촉발된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어지며 일찍부터 혹독한 겨울을 예고했다. 지난 9월, 독일은 새로운 에너지 조례 제정을 통해 랜드마크 건물들의 조명을 밝히는 것을 금지하는 임시조치를 했으며,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과 베르사유 궁전의 야간 조명 소등시간을 앞당겼다. EU 소속 12,000여 도시들이 대부분 공공 야간 조명 소등에 동참하며 어두운 겨울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심각한 유럽의 에너지 위기는 우리와 별개의 문제일까?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 에너지 수입의존도 92.8%를 기록하고 있으며, OECD 국가 평균 대비 높은 에너지 소비량과 전력소비 증가를 보이고 있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로 언제든 글로벌 에너지 대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당장 이번 겨울, 수급에는 큰 문제가 없겠지만 급격한 가격 상승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적절한 수요 관리와 함께 전력 시장의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북적이는 연말을 되찾은 시민들에게 이러한 논의는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연말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고 당장 눈앞의 화려하고 안락한 일상이 곧 어떤 청구서로 돌아올지 살펴볼 때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시민들에게 글로벌 에너지 위기 상황과 그 영향을 제대로 알리고 이를 헤쳐 나가기 위한 합리적 대안 마련을 위하여 정보 공개와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시민들 역시 마음을 모아 이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변화를 통한 에너지 절약 및 수요 관리 효율화에 동참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난 14일, 올 겨울 들어 가장 낮은 온도를 기록하며 전국에 한파주의보가 발령되었다. 전 세계에서는 에너지 요금이 올해의 절반이었던 해를 기준으로 해도 매년 1만명이 겨울철 한랭 질환으로 사망한다고 한다. 유럽발 에너지 대란과 높은 에너지 가격으로 올해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에너지 빈곤층으로 분류되어 난방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후변화'가 구글 코리아 올해의 검색어 1위로 꼽혔다는 2022년의 연말, 여전히 서울 시내를 가득 메운 화려한 조명 장식을 맘 편히 즐기지만은 못하는 이유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유럽과 같은 어둠 속의 랜드마크는 아닐까?

 


[참고자료]

한국경제, 2022.12.14. 신세계백화점, LED로 꾸민 '미디어 파사드'…화질은 높이고 에너지는 절약

POLITICO, 2022.09.15. To save energy, Europe turns off the lights

QUARTZ, 2022.09.09. Rich countries need to start switching off the lights at night

전기신문, 2022.09.23. 유럽발 에너지위기는 어떻게 한국의 경제위기로 이어지나

경향신문, 2022.12.14. 영국, 12년 만의 한파에 ‘난방 빈곤층’ 우려